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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金才童

1910. 4. 6 ~ 1932.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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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재동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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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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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청년동맹원

포상 정보

  • · 애국장(1993)

관련 사건

  • · 한영섭 비문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3) 1910년 4월 6일 제주도 조천면(朝天面) 함덕리(咸德里)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 초 제주에서 청년운동에 나섰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르던 중 사망하였다. 1931년 이른바 ‘한영섭 비문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1931년 1월 15일 제주 함덕 출신으로 일본에서 공산주의 활동과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한영섭이 도쿄에서 사망하였다. 이에 제주 함덕리 청년동맹원들은 한영섭의 장례를 동지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하였다. 1월 17일 송건호 등 청년동맹원들은 한윤섭의 집에 모여 ‘추도 적혁(赤革) 한영섭의 영’, “불평등한 사회를 타도하고 무산계급의 자유를 건설하려고 그대는 죽었지만 그대의 주의 정신은 동지인 우리들에게 계승되어 분투할 것이니 고이고이 진좌하라”는 내용을 적은 기를 만들어서 다음날 장례식에 세워놓았다. 또한 청년동맹원들은 돈을 갹출해 비석을 만들었다. 비석 앞면에는 「동지적광한영섭기념비(同志赤光韓永燮記念碑)」라고 새기고 뒷면에는 “차디찬 흰 빛 밑에 눌린 무리들아 고함쳐 싸우라고 피 뿌린 동지였다”라는 비문을 새겼다. 그리고 같은 날 비석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함덕리에서 약 300m 떨어진 공동 우물 부근에 세웠다. 마침내 1931년 1월 19일 한영섭의 시신이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1월 21일 청년동맹원들이 한윤섭의 집에 모여 추도 깃발을 만들어 세우고 장례식 때 적기가를 부르면서 반일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일제는 함덕리에 형사들을 파견하여 한영섭 장례식에 비석을 세운 이들을 단속하였다. 그 결과 3월 29일부터 청년 20여 명이 붙잡혔고, 비석 역시 압수되었다.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항고하던 중 대구형무소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1932년 3월 14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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