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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성

金長星

1913. 2. 7 ~ 1932.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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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장성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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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龍仁)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용인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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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수원격문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913년 2월 7일 경기 용인군 기흥면 공세리(貢稅里)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 수원군 수원면 산루리(山樓里)이다. 본관은 밀양(密陽). 수원에서 생선 장사를 하면서 수원소년동맹(水原少年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0년 여름 수원소년동맹원으로 같이 활동하던 홍종근(洪鍾根)이 『조선일보』에 실린 격문 살포 기사를 보고 수원에서도 이 같은 격문을 제작, 살포할 것을 제의하자 적극 찬성하고 함께 실행 계획을 준비하였다. 같은 해 10월 12일 수원 화성학원(華城學院)의 운동회가 열리는 것을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여, 10월 11일 홍종근의 집에서 모여 「무산대중(無産大衆)에게 격(檄)함」이라는 제목으로 “노동자, 농민들이여 일치단결하자. 전민족적 대중투쟁을 분기하자. 자본가의 착취에 대해 최후까지 반항하자. 조선총독부의 폭압정치를 타도하자. 무산자, 노동자, 농민 만세”라는 취지의 격문 16매를 작성하였다. 그 날 밤 홍종근과 함께 수원면 북수리(北水里) 최성운(崔聖運)의 집 앞과 팔달문, 수구문, 화성학원 앞, 청년동맹운동장 등 읍내 10여 개소에 조선총독부의 폭압 정책을 비판하고 민족적 대중투쟁을 선동하는 격문을 게시하였다. 이로 인해 1930년 11월경 수원경찰서에 붙잡혀 1931년 2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3월 1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징역 1년이 확정되었다. 김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발병하여 1932년 1월 29일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자택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932년 3월 9일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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