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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章龍

金章

1926. 1. 15 ~ 2015.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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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章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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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산(蔚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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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7) 1926년 1월 15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강동면(江東面) 정자리(亭子里)에서 태어났다. 1940년대 중반 비밀단체를 결성하고 항일 투쟁에 나섰다가 붙잡혀 광복을 맞기까지 고초를 겪었다. 1944년 부산 제2공립상업학교(부산상고 전신)에 재학 중, 일본인 교사의 회유로 일본군 군속 시험에 응시하게 되었다. 같은 해 3월 진해(鎭海)에 위치한 일본 해군 제51항공창의 중견간부 공원(工員)으로 선발되어 항공창 설계과에 배치되었다. 이곳에서 항공기 제작과 수리 업무 등을 담당하다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에 동원되었음을 자각하고 한국인 동지들과 항일운동을 준비하였다. 진해 신니동에서 하숙하며 차익환·안동현 등과 민족의식을 공유하는 한편 직접 항일운동에 나설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인근 야산에서 주기적으로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등 독립의식을 고취하고, 항일운동에 동참할 동지 규합에 나섰다. 나아가 일본의 패망을 확신하며 항공창 내 한국인 공원들과 규합하여 집단 태업(怠業)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944년 7월 사전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 헌병의 기습적 검거로 붙잡혔다. 헌병대로 끌려간 이들은 2개월간 갖은 고문과 취조를 당한 끝에, 8월 말에 해군형무소로 이송되었다. 1944년 12월 말 진해경비사령부 군법 회의에서 재판을 받았다. 재판정에서 “조국을 찾기 위하여 만세를 부르는 것은 당연하며, 고로 우리는 죄가 없다”라고 항변하였으나,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후 김천소년형무소로 이감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광복과 함께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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