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임방
金任方1916. 1. 12 ~ 1991. 3.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결심대(決心隊)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왕산죽창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6년 1월 12일 경상북도 경산군(慶山郡) 남산면(南山面) 산양리(山陽里)에서 아버지 김재홍(金在洪)과 어머니 김청래(金淸來)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산양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44년 6월 남산면 사월리 출신 박재달(朴在達)등은 남산면 청년들을 규합하여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 뒤, 같은 해 7월 5일부터 7월 15일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회합을 가졌다. 이때 7월 8일 열린 2차 회합에서 사월리 청년들을 비롯하여 송내리(松內里)의 김위도(金渭道), 남곡리(南谷里)의 최외문(崔外文) 등과 함께 산양리 대표로 참석하였다. 7월 15일 산양리의 최순한(崔順瀚)과 함께 원당보에서 열린 3차 회합에 참가하여 29명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1944년 7월 26일 남산면 사월·산양·송내·남곡리에서 모인 26명의 청년들과 함께 대왕산으로 올라갔다. 박재달 등 정보연락대 3인 외에 대왕산에 오른 26명의 청년들은 결심대(決心隊)를 조직하여 편제를 갖추었다. 이때 1소대 소대장 성상룡(成相龍) 휘하에 배속되어 투쟁하였다. 7월 26일부터 8월 13일까지 3차례에 걸친 일본 경찰의 공격을 물리쳤다. 이들이 거둔 승리는 일본 경찰에게 적지 않은 당혹감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결심대는 주재소 파괴와 주재소 주임 처단, 식량공급과 진지 이동 등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1944년 8월 9일 식량 공급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대원들과 함께 하산하여 은신하였으나 8월 13일까지 모든 대원들이 체포되는 과정에서 함께 붙잡혔다. 남산면사무소에서 이틀 동안 조사를 받고 경산경찰서로 이송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폭력행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44년 10월 14일경 대구형무소로 다시 이송되어 심한 고문을 받는 등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월 17일 광복 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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