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一鉉
一鉉미상 ~ 193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간회 성진지회
- · 성진청년동맹
- · 성진농민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5
- · 13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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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함경북도 성진군(城津郡)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출생년월일은 확인되지 않는다. 김갑진(金甲辰)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고, 유년 시절에는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 1928년부터 청년운동에 나섰다가 붙잡혀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1928년 2월 성진청년동맹(城津靑年同盟) 학상면(鶴上面) 북부 지부의 서무재정부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2월 27일 성진청년동맹 제2차 대회에서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9년 4월 24일에는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함경북도연맹회 제3회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에 선출되었고, 같은 해 12월 25일 신간회(新幹會) 성진지회 제4차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0년 2월 25일 개최된 함경북도연맹회 제3회 집행위원회에서 선전부원으로 뽑혔다. 1930년 5월 함경북도 지방에서 일어난 ‘5·13사건’으로 붙잡혔다가, 그 해 10월에 풀려났다. 이듬해 3월 13일 신간회 성진지회 해소에 따른 임시집행부에서 검사위원(檢査委員)을 맡았다. 1931년 5월 13일 결성된 성진농민조합(城津農民組合) 집행위원과 검사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성진농민조합은 소작료 인하투쟁과 채권문서 탈취, 소각 투쟁, 스파이 징벌투쟁, 야학철폐 반대 운동 등을 전개하였으며, 2,000여 명의 조합원과 관내 7개 면에 14곳의 지부와 45개의 반(班)을 두었다. 이와 같이 조직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일제 당국의 탄압 또한 강화되었다. 1931~1932년 사이 김도흠(金道欽)을 비롯한 간부들은 물론 다수의 조합원들이 붙잡혔다. 이때 조합원 동료들과 함께 성진경찰서에 붙잡혔다가, 청진검사국으로 이송되어 재판을 기다리던 중 1934년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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