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조
金壹兆1912. 8. 24 ~ 1985. 2.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대구 군용열차 전복미수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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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2) 1912년 8월 24일 경상북도 김천군(金泉郡) 아포면(牙浦面) 제석동(帝錫洞)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아명은 김만돌(金萬乭)이다. 스무살 되던 해 김천에서 항일운동에 나섰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31년 12월 2일 밤 10시경, 동네 선배 김복만(金福萬), 후배 박갑천(朴甲天)·장삼조(張三兆) 3인과 함께 제석동과 이웃 마을 국사동(國士洞) 사이의 경부선 철로에서 김천역과 구미역(龜尾驛) 사이의 전화선을 절단하였다. 그리고 철로 곁의 토관표목(土管標木) 2개, 무단통행 경고판 1개, 곡선표석(曲線標石) 1개와 각각의 받침대를 뽑아다 선로 위에 걸쳐놓거나 세워놓았다. 같은 해 9월의 만주사변(滿洲事變) 발발 이후로 부산발(釜山發) 만주행 군용열차의 경부선 통행이 빈번해졌음에 불만을 품고서 기차 전복까지도 염두에 두고 벌인 항일 행동이었다. 이 사실이 이튿날 오전 철도순시원에게 발각되어, 수사 개시 며칠 만에 경찰에 붙잡힌 후 조사 받고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으로 송치되었다. 1932년 3월 1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왕래 방해(기차전복 미수)' 명목으로 징역 5년 구형에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그 해 4월 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형기 만료 3개월 전인 1933년 12월 1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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