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一圭
一圭1924. 1. 27 ~ 2003. 7.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독립청년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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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4년 1월 27일 경상남도 마산부(馬山府) 만정(萬町,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금촌일규(金村一圭)이다. 1938년 부산 동래중학교(東萊中學校)에 입학한 후 독서회, 비밀결사 등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동래중학교 재학 중이던 1940년 은사 허현(許鉉)의 지도로 양중모(梁仲模)·남기명(南基明)·김진훈(金鎭焄) 등과 함께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였다. 미·일 간에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1941년 겨울 독서회원들과 함께 조선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자고 맹세하고, 독서회를 조선청년독립당(朝鮮靑年獨立黨, 일명 조선독립당)이라는 비밀결사로 강화하여 재결성하였다. 1942년 봄 회합에서 조선독립당의 강령과 부서를 정하고 항일투쟁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세우는 등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하였다. 당원 간의 연락은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암호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당시 당원의 내무·연락·당비(黨費)·서류보관 등의 일을 담당하는 행동반(行動班)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후 이들은 여러 차례 회합을 거듭하면서 행동방략 등을 논의하였으며, 1943년 졸업과 동시에 직접적인 행동을 개시하였다. 국내외 정세 조사, 청소년의 훈련, 무기와 탄약 제조 등을 위해 각기 담당자를 결정하였으며, 자일회(紫一會)·순국당(殉國黨) 등 부산의 다른 학생 결사들과도 연락하면서 준비를 진행하였다. 1944년 8월 1일 7명의 당원들은 3일 동안 계속 회합하면서 그 동안의 활동을 보고·정리하고 군사기밀을 탐지한 것을 분석하여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 일본군의 탄약고 폭파, 군용열차가 통과할 때 구포다리를 폭파하는 것 등이 결정되었다. 또한 거사가 실패할 경우 일단 일본군에 입대한 후 연합군 진영으로 탈출하여 중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1944년 7월 말 순국당 조직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자, 위 회합 직후인 8월 8일~15일 사이에 당원 10명이 붙잡혔다. 순국당은 조선청년독립당원 이관수(李觀洙)의 지도로 1944년 5월 1일에 결성된 조직으로서, 조선독립당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해 9월 2일 7명의 당원들과 함께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당시 일제당국은 이들에게 가족의 면회도 금지한 채 혹독한 고문을 자행하여 결국 김진훈이 고문치사(拷問致死)를 당하기도 하였다. 거의 1년간 부산형무소에 미결수로 구금되어 있다가 1945년 8월 초부터 본격적인 조사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광복을 맞아 8월 16일 풀려났다. 2003년 7월 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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