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학
金仁學1916. 5. 20 ~ 1937. 2.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전남운동협의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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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916년 5월 20일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군외면(郡外面) 불목리(佛目里)에서 태어났다. 1933년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협의회는 1933년 5월 14일 해남군 북평면 성도암(成道庵)에서 조직된 비밀 결사로 해남의 김홍배(金洪培)·오문현(吳文鉉)과 완도 황동윤(黃同允)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하였다. 협의회는 전남 지역의 농민·어민·노동자와 지식인을 포함한 사회주의 운동의 통일적 지도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협의회 조직은 사무부(事務部)·조직부(組織部)·조사부(調査部)·구원부(救援部)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기관지로 『농민투쟁(農民鬪爭)』을 발간하였다. 같은 해 8월 11일 제3차 전체회의를 열고 운동 방안에 관해 협의한 결과 운동 대상에서 노동자를 제외하고 농민층을 중심으로 활동 영역을 제한하였다. 또한 종래와 같은 위로부터의 조직 형태를 지양하고 농촌 각 부락에 2~5명의 농민반·청년반·소년반을 결성하여 각 반을 면(面) 단위로 확대한 후 이를 각 군(郡)의 적색농민조합의 지부로 삼는 아래로부터의 조직 구성을 시도하였다. 따라서 명칭도 적색농민조합건설 준비위원회(赤色農民組合建設準備委員會)로 개칭하였다. 이후 협의회는 완도·해남·강진(康津)·장흥(長興)·영암(靈岩) 등의 지방에 53개의 농민반과 26개의 야경단, 28개소의 야학(夜學)을 설치하여 조직 확대와 사회주의 사상의 보급에 힘썼다. 또한 장흥·해남·완도 등에서 10여 차례의 소작쟁의, 어업조합(漁業組合) 폐지 운동, 강제 연금 인출 투쟁 등을 지도하여 5차례에 걸쳐 목적을 관철하였다. 1933년 12월 완도군 군외면 불목리 박동준(朴東俊)의 집에서 협의회 청년반을 조직하고 책임자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활동 중 조직이 노출되어 동지들과 함께 1934년 2월 중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7년 1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으나 일제 경찰로부터 받은 가혹한 고문의 여독으로 같은 해 2월 13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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