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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봉

金仁鳳

1916. 7. 18 ~ 198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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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인봉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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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慶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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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결심대(決心隊)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왕산죽창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6년 7월 18일 경상북도 경산군(慶山郡) 남산면(南山面) 사월리(沙月里)에서 아버지 김해영(金海泳)과 어머니 최필야(崔弼耶)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인공립보통학교(慈仁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남산면 농업지도원을 거쳐 1942년 남산면사무소의 기수(技手)로 근무하고 있었다. 1944년 6월 남산면 사월리 출신 박재달(朴在達)이 남산면 청년들을 규합하여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할 때, 박재천과 함께 참여하였다. 남산면사무소 기수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국의 변화와 일제의 정책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박재달·재천 형제와 함께 모두 3차례에 걸친 회합을 통해 동지 규합과 탈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1944년 7월 26일 대왕산으로 탈출할 때까지 제반 정보를 탐지하는 등의 임무를 맡았다. 7월 26일 새벽 4시 30분경 남산면 사월·산양·송내·남곡리의 청년 26명이 대왕산으로 올라간 뒤, 박재달·재천 형제와 함께 마을에 남아 정보연락을 맡았다. 대왕산에 오른 26명의 청년들은 결심대(決心隊)를 조직하고 편제를 정한 뒤, 8월 13일 전원이 붙잡힐 때까지 일제 경찰과 투쟁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보연락대의 대원으로 이들을 후원하였다. 나아가 결심대가 3차례에 걸친 일제 경찰의 공격을 물리친 뒤, 주재소 공격과 식량 공급, 그리고 진지이동에 대한 계획을 세울 때 결심대의 헌병대와 협조하기도 하였다. 1944년 8월 9일 식량 공급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대원들이 모두 하산하여 은신하다가 8월 13일 전원 체포될 때 함께 붙잡혔다. 이후 남산면사무소에서 이틀 동안 조사를 받고 경산경찰서로 이송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44년 10월 14일경 대구형무소로 이송되어 심한 고문을 받는 등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월 17일 소송이 취하되어 출소하였다. 해방 후 남산면사무소에 근무하다가 사월동장을 지냈다. 1982년 7월 25일 사망하였다. 1995년 5월 사월리에 「대왕산죽창의거공적비(大王山竹槍義擧功績碑)」 가 건립되었으며, 2015년 5월부터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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