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學善
學善1921. 3. 3 ~ 2009. 6.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의용대
- · 한국광복군 제1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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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8) 1921년 3월 3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의주읍(義州邑) 초음리(初音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서진무(徐振武)를 사용하였다. 1937년 4월경 중국으로 건너가 톈진(天津)에서 점원 생활을 하다 같은 해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난징(南京)으로 옮겨갔다. 독립운동가 임득산(林得山)의 조카인 임달룡(林達龍)의 손아래 처남이 되는 인연으로, 임득산이 태평로(泰平路)에 위치한 강필대공상점(鋼筆大工商店)의 점원으로 들어갔다. 1937년 11월 일본군의 난징 침공이 시작되자 상점 직원들과 함께 피난하였고, 여러 곳을 거쳐 1938년 3월 충칭(重慶)에 자리를 잡은 후 점원 생활을 이어갔다. 1940년 조선의용대 제3지대에 들어갔다. 조선의용대가 앞서 1938년 10월 한커우(漢口)에서 조직되고, 1939년 11월 후난성(湖南省) 헝양(衡陽)에서 제1구대(區隊) 병력의 절반을 제1지대(支隊)로, 나머지 절반과 신입 대원을 혼합하여 제3지대로 재편하였다. 대장 김세일(金世日)이 지휘하던 제3지대는 주로 장시전선(江西戰線)의 접적지구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 총대부(總隊部)의 명령에 의해 충칭으로 이동하였던 것이다. 이때 조선의용대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1941년 봄에 조선의용대의 병력 상당수가 황허(黃河)를 건너 화베이(華北)의 팔로군(八路軍) 작전구역으로 이동해갔지만, 동행하지 않고 충칭에 그대로 남았다. 한편 1942년 4월 16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회의의 결정에 의해, 조선의용대는 광복군 1지대로 개편되었고 그 해 7월, '조선의용대개편선언' 에따라 광복군 제1지대 대원으로서 활동하다 8·15 광복을 맞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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