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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金顯奎

187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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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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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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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청양군 비봉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비봉면(飛鳳面) 강정리(江亭里)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46세로, 1874년생으로 추정된다. 청양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청양군 비봉면의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강정리와 신원리(新院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강정리에서는 4월 8일과 9일 이틀 동안 서로 다른 유형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4월 8일 밤 일어난 제1차 만세시위는 횃불 시위였다. 강정리의 횃불 시위는 유남식(劉南植)과 유천식(兪天植)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주민 10여 명과 함께 마을의 뒷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한동안 횃불 시위를 전개하였다. 신원리에서는 정상길(鄭相吉)의 주도로 대치면(大峙面) 상갑리(上甲里)의 유환방(兪煥邦)·유경재(兪暻載) 등 주민 100여 명과 함께 마을 앞 도로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한 뒤, 문박산(文博山)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계속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4월 8일 밤 강정리와 신원리에서 전개된 횃불 시위에 크게 공감하여 그 뒤를 이은 제2차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같은 동리에서 교류하던 이상유(李象裕)를 찾아가 만세시위에 대해 의논하여 서로 의기투합하였다. 이상유의 집에서 강정리 주민들을 모아 만세시위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10여 명의 주민이 동참을 약속하였다. 4월 9일 이상유와 함께 주민 10여 명을 지휘하여 동리의 야산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시위 직후 강정리의 제2차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법원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5월 12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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