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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賢敬

賢敬

1897. 6. 20 ~ 1986.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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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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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公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공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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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8)

관련 사건

  • · 공주면 공주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8) 1897년 6월 20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공주읍 본정(本町, 현 공주시 중동)에서 대한제국의 무관(武官)이던 김상혁(金相赫)의 2남 1녀 중 막내딸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이명으로 김현경(金賢卿)·김순점(金順点) 등이 있다.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0년 경술국치로 부친이 퇴관하여 공주로 낙향하게 되자, 영명여학교(永明女學校)로 전학하였다. 졸업 후 보통학교(普通學校) 교사로 부임하여 근무하던 중 1919년 4월 1일 공주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공주에서의 만세시위는 3월 초부터 지속적으로 시도되었으나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사전에 저지되었고, 김희봉(金喜鳳)의 주도로 3월 17일 최초의 만세시위가 공주장터에서 전개되었다. 이후 4월 1일의 만세시위는 영명학교(永明學校)의 교사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의 유학생이었던 오익표(吳翼杓)와 안성호(安聖鎬)는 2월 공주로 귀향하여 함께 만세시위를 추진할 동지 규합에 노력하고 있었다. 3월 24일 영명학교 교실에서 열린 비밀 모임에 오익표·안성호를 비롯하여 영명학교 교사 김관회(金寬會)·현언동(玄彦東), 영명여학교 교사 이규상(李圭尙), 기독교회 목사 현석칠(玄錫七)과 안창호(安昌鎬)·김사현(金士賢) 등이 참석하여 만세시위에 대해 협의하였다. 이들은 공주장터의 장날인 4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각자 역할을 분담하여 연장자인 현석칠이 만세시위 전체를 지휘하는 대표를 맡았다. 김관회·현언동은 공주 관내 각 학교 남학생들의 참여 유도와 「독립선언문(獨立宣言文)」 인쇄를 담당하였다. 이들은 각 학교에 만세시위에 대한 동참을 설득하는 한편, 만세시위에 찬동한 유준석(柳俊錫)·노명우(盧明愚) 등 영명학교 학생들을 통해 학교에서 「독립선언문」 1,000매를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말 공주 관내 여학교 학생들의 참여 유도를 담당한 이규상으로부터 만세시위 권유를 받고 참여를 결심하였다. 이규상으로부터 태극기를 전달받아 4월 1일 자신의 집에 함께 모여 있던 영명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공주장터로 나가 적극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시위 현장에서 일제 경찰의 칼에 맞아 부상당한 채로 붙잡혔다. 공주경찰서의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인정되어 법원에 송치되었다. 1919년 8월 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4월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투옥되었다. 공주형무소에 옥고를 치르던 중 유관순(柳寬順)을 알게 되어 옥중에서 교류하였다. 풀려난 후 서울의 이화학당(梨花學堂)에 진학하여 재학하던 중에 유관순이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어 1920년 9월 28일 옥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이화학당 교수였던 앨리스 아펜젤러(Alice R. Appenzeller)와 함께 유해를 인수하여 학교장(學校葬)을 치렀다. 1920년대 초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으나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충남 홍성(洪城)에서 작은 점포를 운영하며 생활하다가 1986년 8월 15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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