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근
金海根1860. 7. 1 ~ 1946. 2. 1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남원군 남원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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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 남원시) 사매면(巳梅面) 관풍리(官豊里)에서 태어나 고향 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4일 남원읍 장날을 기해 이형기(李炯器), 이성기(李成器) 이형기(李炯器)·이성기(李成器) 등이 주도한 남원읍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남원지역에서는 1919년 4월 3일 식수기념일(植樹紀念日)을 기회로 덕과면(德果面)에서 맨 처음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주변 남원 군민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만세시위를 계획하던 남원읍내와 각 면의 인사들은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4월 4일 남원읍 장날을 기회로 하여 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때마침 4월 4일은 덕과면 만세운동의 주도자로서 헌병주재소에 감금되었던 덕과면 면장 이석기(李奭器) 등의 남원읍 호송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분노한 주민들의 참여도 이끌어낼 끌어낼 수 있었다. 이때 유창근(柳昌根), 천연도(千年桃)와 함께 이형기와 이성기, 이용기(李龍器)로부터 만세시위에 참여하라는 권유에 찬성하였다. 당일 정오경부터 광한루(廣寒樓) 광장에 모인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는 남문(南門)을 거쳐 북시장(北市場) 방향으로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는데, 이형기·유창근·천연도 등과 같이 곤봉을 들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상점을 습격하였다. 그리고 주변의 조선인들에게 조선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요청하며 만세시위를 앞에서 이끌었다. 이날 오후 시위 군중이 장터 앞 헌병분견소에 도착하여 만세시위를 벌이자 일본 헌병과 수비대는 무차별 사격을 하였고, 이에 시위대는 많은 사상자를 낸 채 해산되었다. 이후 일제의 단속으로 붙잡혀 1919년 5월 9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8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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