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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증

金恒曾

185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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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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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신흥(新興)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신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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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함경남도 신흥군(新興郡) 동상면(東上面) 광대리(廣大里)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63세로, 1857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신흥군 동상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신흥군은 1914년 함흥군(咸興郡)과 홍원군(洪原郡), 장진군(長津郡)의 일부를 합쳐 새로 만든 행정구역이었기 때문에 신흥군의 만세시위는 함흥군(咸興郡)의 함흥군의 영향을 받았다. 1919년 3월 2일 시작된 함흥군의 만세시위는 8일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위에 이어 신흥군의 만세시위는 같은 해 3월 9일과 10일 동고천면(東古川面)에서 신흥공립보통학교(新興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고, 3월 11일 원평면(元平面)과 동고천면, 12일 가평면(加平面)과 영고면(永高面) 등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신흥군의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확산되었다. 3월 14일 정오경 동상면 신성리(新成里)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신흥군의 북부지역에 위치한 동상면은 원래 장진군의 동부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흥군으로 편입된 곳이었다. 군내 각 곳에서 학생들이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잡혀 가는 것을 보고 방관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연숙(李璉淑) 등 신성리 주민 10여 명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동상면의 면 소재지인 원풍리(元豊里)로 행진하였다. 이를 본 원풍리 주민 150여 명도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이때 시위대에 함께 참여하였고, 동상면 면사무소와 헌병 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15일에는 원평면 장터에서 원평면과 가평면 주민 1,000여 명이 모여 일제의 통치를 규탄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3월 31일에는 동고천면과 상원천면(上元川面)에서도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이때 붙잡혀 1920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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