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한익

金漢益

1890. 9. 13 ~ 1933. 6. 3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한익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남 함양(咸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함양군 함양시장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0년 9월 13일 경상남도 함양군(咸陽郡) 병곡면(甁谷面) 연덕리(延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함양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자 함양군에서도 만세시위를 계획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정순길(鄭淳吉)·윤보현(尹普鉉)·정순귀(鄭淳貴)·노경식(盧璟植) 등 4명이 3월 28일 함양읍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를 행하기로 결의하고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28일 함양읍 장터에 몰래 들어간 이들은 만들어온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준 후 대한독립만세를 앞장서서 외쳤다. 이에 호응한 군중이 일제히 만세를 부르자 일본 헌병은 주도 인물 4명을 붙잡았다. 그러나 격분한 수천 명의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계속하다 해산하였다. 만세운동을 계획하던 중 이 소식을 접하고 다음 장날인 4월 2일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인근 지역의 동지를 모았다. 4월 2일 아침 일찍 자신의 집에서 대형 태극기를 만들어 가지고 함양읍 장터로 나가 시장 중앙에 쌓여있던 소금가마니 위에 올라서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모여있던 군중이 일제히 호응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면서 3,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밀집하였다. 오후 5시경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였으나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에게 붙잡혔다. 이에 시위 군중은 헌병분견소로 몰려갔고 일본 헌병은 일제히 총격을 가하면서 진압하였다. 1919년 5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이에 상고하였다. 같은 해 7월 7일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1933년 6월 3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