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기
金漢琦1897. 12. 27 ~ 1982. 3.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동래군 범어사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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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12월 27일 경남 동래군(東萊郡) 북면(北面) 남산동(南山洞, 현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승명은 말종(末鍾), 말종(末宗)이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범어사(梵魚寺) 부속 명정학교(明正學校) 생도였다. 당시 범어사 사찰 내에는 초등학교 과정의 명정학교(明正學校)와 중등학교 과정의 지방 학림이 있었다. 1919년 서울에서 거국적인 만세운동이 계획되던 2월 하순경, 불교계의 민족 대표인 한용운(韓龍雲)이 범어사로 내려와 주지 오성월(吳惺月)·이담해(李湛海)·오이산(吳梨山) 등을 만나 서울의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범어사는 7인의 대표를 서울로 파견하였는데, 명정학교 대표자격으로 차상명(車相明)·김봉환(金奉煥)·김영규(金永奎) 등과 함께 상경하여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열린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내려왔다. 서울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던 김영규·차상명·김봉환·김상기(金相琦)와 함께 동래에서의 만세운동을 도모하였다. 3월 18일 동래읍(東來邑)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사전 준비를 진행하였다. 3월 17일 오후, 범어사 경내에서 열린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학생들의 졸업생 송별회 자리에 참석하여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연설을 하였다. 계속하여 4명의 연설이 이어졌고 참석한 40여 명의 학생 일동이 찬성하여 동래로 나가 시위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학생들과 함께 밤을 틈타 선리(仙里) 뒷산과 동래향교 뒷산을 넘어 이동하여, 이튿날 새벽 1시경 동래읍 복천동(福泉洞)에 있는 불교포교당(현 부산 법륜사)에 도착하였다. 날이 새기를 기다리던 중 명정학교 학생의 밀고를 받아 출동한 일본 군경에 의해 김영규·차상명·김상기 김영규·차상명·김상기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되어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옥에서 나온 후 범어사 불교전문학원에서 학업을 계속하였고 월평사립학교 교사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 후 범어사에서 승려 생활을 계속하면서 후배 승려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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