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원
金學源188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관련 사건
- · 연백군 운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1)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운산면(雲山面) 석산리(石山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9년 당시 39세였던 것으로 보아 1881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연백군은 연안군(延安郡)과 배천군(白川郡)이 1914년 통합되어 만들어졌다. 연안읍(延安邑)을 중심으로 하는 옛 연안군 지역에서 만세시위는 1919년 2월 28일부터 준비되어 3월 15일 처음 일어났다. 이에 비해 옛 배천군 지역에서는 만세시위가 3월 30일 처음 일어났다. 두 지역의 교류가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3월 하순부터 만세시위가 본격화된 옛 배천군 지역에서는 서울에서 만세시위에 참가하고 귀향한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京城女子高等普通學校) 학생 최은희(崔恩喜)와 형부인 창동학교(彰東學校) 교사 송흥국(宋興國) 등이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이후 3월 30일 은천면(銀川面) 연남리(蓮南里)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는데 송흥국·이정식(李庭植) 등은 최은희가 가져온 「동포야 일어서자」라는 격문과 새로 쓴 「충고문(忠告文)」을 등사하여 배포하였다. 이날 시위에는 1,000여 명이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30일 밤 박윤조(朴允祚)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운산면 석산리 발산동(鉢山洞)에 사는 주민 5명이 「독립선언서」를 보여주며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자 이에 동의하였다. 3월 31일 운산면에서 마을 주민 4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만세시위에는 면사무소 직원들도 동참하여 규모가 2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같은 날 유곡면(柳谷面) 영성리(永成里)의 홍현(紅峴) 시장과 은천면 옥산리(玉山里)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는데, 이 지역은 모두 옛 배천군 지역이었다. 특히 옥산리 시위에서는 김학범(金學範)·오영근(吳榮根) 등의 주도로 청년 학생들이 헌병 분견소를 습격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방해죄로 징역 1년을 받았으나 불복하고 항소하였다. 그 후 1919년 6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로 감형되었고, 1919년 7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열린 상고심에서 징역 10월이 최종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