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술
金學述1897. 11. 14 ~ 1932. 3.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관련 사건
- · 금산군 금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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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9) 1897년 11월 14일 전라북도(현 충청남도) 금산군(錦山郡) 금산면(錦山面) 상옥리(上玉里)에서 태어났다. 김용술(金用述)이라고도 불렸으며,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전국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금산군에서의 만세운동은 3월 말에 본격화하였다. 임승환(任勝煥)을 비롯해 청년들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니 금산에서도 마땅히 이에 호응하는 항일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3월 23일 금산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만세운동을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거사 전날인 3월 22일 자택에 사람들을 모아 자신의 이름과 임승환의 이름으로 「금산경고(錦山警告)」라는 격문을 작성하였다. 격문은 “세계열강은 각각 적극적인 행동으로 성립하고 있다. 우리 조선은 건국 4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문명을 이루었으며 인의(仁義)의 인물이 있는 나라이다. 현재 일본의 강제적인 정치 아래에서 고통을 겪는 것은 우매한 사상과 매국적자들의 탓이다. 우리 동포 청년들은 이러한 간교한 자들의 행동을 배우지 말고 인도를 주창하며 압박 정치 아래의 금수와 같은 생활을 면하고 독립적인 자유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정신을 가진 동포는 오늘 오후 2시 시장에 나와 함께 행동을 할 것이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금산면사무소 서기인 김종구(金鍾九)가 사무소 등사판을 이용하여 격문 약 150부를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23일 구호열(具浩烈)·변희조(卞熺朝) 등이 먼저 나서서 장터로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격문을 배포하였다. 항일의 의지를 담은 격문의 내용으로 장터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오후 2시경 임승환과 함께 동지 청년들을 이끌고 만세를 선창하기 시작하였다. 모여든 시위 군중의 규모는 금세 수천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놀란 일제 측은 금산의 헌병부대를 동원하여 시위 군중을 진압, 해산시켰다. 일제 관헌의 진압 과정에서 만세운동의 주도자로 지목되어 붙잡혔다.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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