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팔윤
金八允1890. 7. 6 ~ 1937. 12.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0년 7월 6일 충남 서산군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桃李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4월 4일 고향인 서산 대호지면 도이리와 정미면(현 당진시 정미면) 천의(天宜) 장터에서 군중 1,00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 이두하(李斗夏), 남계창(南啓昌), 남상직(南相直), 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雲), 강태완(姜太玩), 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거사 당일 대호지면장 이인정은 면사무소에 모인 400명의 군중을 향해 만세운동에 나설 것을 연설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어 독립선언서 낭독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면서 군중들도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천의시장으로 이동하였다. 그 과정에서 군중은 8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전 11시경 천의시장에 도착한 군중들은 시장터에 시장 한 가운데에 대형 태극기를 세우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장터 시장 일대를 시위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이 출동해 태극기를 빼앗으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자, 남태우와 함께 일본 경찰 2명을 논으로 밀어붙이면서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그러자 경찰이 발포해 군중 가운데 4명이 총상을 입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시위대와 함께 경찰주재소를 공격해 시설물과 기물을 파손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붙잡혀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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