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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泰午

泰午

1880 ~ 1919.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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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泰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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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論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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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관련 사건

  • · 논산군 논산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은진면(恩津面) 등리(登里)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9년 만세운동 당시 40세로, 188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태오(泰吳), 태호(泰昊)이다. 1919년 만세운동 때 부여 천도교 교구실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이어 논산 읍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일 오후 6시경 논산 아사히마치(旭町, 현 논산시 반월동) 천도교 교구실에서 이백순(李伯純)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서울에서 인종익(印宗益)이 전북 전주에 전달한 「독립선언서」를 건네받은 전북 익산 함열 천도교 교구원인 민영순(閔泳淳)이 다시 부여 천도교 교구에 배포할 것을 부탁하면서 「독립선언서」 40매를 주었다. 「독립선언서」를 받은 즉시 1묶음을 가지고 논산 교구실을 출발하여 오후 9시경에 부여 읍내 천도교 교구실에 도착하였을 때 부여 교구실에 김종석(金鍾錫)·황우열(黃宇烈)·박성요(朴性堯)·이범인(李範仁)·최규석(崔奎錫) 그 밖에 1명이 있었다. 이들은 민영순이 전한 내용을 듣고 독립운동과 「독립선언서」 배포에 찬성하여 「독립선언서」를 받아, 다음날인 3일 부여 읍내와 군내 각처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한편 이백순은 3월 3일 오전 2시경 나머지 1묶음의 「독립선언서」를 논산 읍내와 기타 여러 장소에서 배포하였다. 이와 같이 논산에서 3월 2일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 부여에 배부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논산 지역에서 최초의 만세운동은 3월 5일 전북 익산의 군산영명학교 학생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여 들은 전해 들은 엄창섭(嚴昌燮)이 부여군 세도면의 창영학교 학생들과 함께 주도하여 3월 10일 강경 읍내 옥녀봉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시작되었다. 만세운동의 열기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논산에서 이백순·손필규(孫弼奎)·이근옥(李根玉) 등과 함께 사전에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독립 만세 운동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염중오(廉象五)·염상오(廉承弼)·염성필(廉聖弼)·박용진(朴容鎭) 등이 주도하여 강경 면민과 학생 100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 만세를 부르며 논산 읍내로 진입하자, 논산 읍내 주민들과 합세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면서 읍내 일대를 활보하는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는데 만세 군중은 1천여 명에 이르렀다. 이에 일제 경찰들이 즉각 출동하여 만세 군중을 제지하고 강제 해산 조치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만세 군중들은 일제 경찰의 명령에 불응하며 계속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 경찰들은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군중들을 해산하였다. 염상오·박용진·염성필 등 4명이 사망하였고, 10여 명이 붙잡혔다. 1919년 3월 12일 밤 만세시위를 나섰던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20여 일간 경찰의 조사와 검사국의 신문을 거치면서 온갖 악행을 당한 후 「독립선언서」 수령, 배부 등과 관련하여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공주지방법원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4월 4일 징역 1년을 받았다. 이후 공주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며 고초를 겪던 중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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