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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섭

金泰燮

1881 ~ 1945.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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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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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신천(信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신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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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신천군 안악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919년 만세운동 당시 39세였으므로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산천면(山川面) 동산리(東山里)에서 태어났다. 만세운동 당시에는 황해도 안악군(安岳郡) 용순면(龍順面) 장산리(長山里)에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안악군의 만세시위는 3월 11일 은홍면(銀紅面) 온정리(溫井里)에서 시작되었다. 기독교인이자 선명학교(善明學校) 교장인 박치간(朴致幹)과 정계로(鄭啓老)·유용원(柳龍源) 등의 주도로 은홍면(銀紅面)과 대행면(大杏面)·서하면(西河面) 등 안악군의 서부지역과 북부지역의 기독교인들이 적극 참여하였다. 이후 3월 28일 안악읍, 29일 용문면(龍門面) 동창리(東倉里), 3월 31일 문산면(文山面), 4월 1일 용순면(龍順面)과 문산면 원성리(遠星里) 등 안악군의 동부지역과 남부지역으로 만세시위가 확산되었다.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안악읍(安岳邑)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된 것은 장날인 1919년 3월 28일이었다. 오전 12시경 읍내 기독교회당의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신호로 수많은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만세시위는 대원면(大遠面) 가양리(可陽里)의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 교회당의 종을 친 이용삼(李容三), 헌병과 경찰의 강제해산 과정에서 중상을 입은 임동균(林東均), 임승문(林承文) 등이 대원면 가양리의 기독교인이었다. 대원면은 안악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곳으로 안악읍과 인접한 곳이다. 이때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헌병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시위대는 강제로 해산되었고,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들이 붙잡혔다. 그러나 그날 밤 안악 읍내에서는 골목 곳곳에서 다시 만세소리가 터져 나왔다. 또한 산등성이와 들판에는 태극기가 휘날렸다. 이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1919년 7월 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다. 그러나 그 해 9월 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확한 형량은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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