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鐸善
鐸善188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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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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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수구면(水口面) 석현리(石峴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4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수안 지역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수안군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이전부터 동학이 전파된 곳이며, 1910년 천도교 수안교구가 설치된 지역이었다. 이로 인해 수안군의 만세시위는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추진·전개되었다. 황해도 곡산의 천도교인 이경섭(李景燮)은 1919년 2월 28일 천도교 중앙총부의 『천도교회월보(天道敎會月報)』과장이자 보성사(普成社) 사장 이종일(李鍾一)의 지시로 수안으로 파견되었다. 3월 1일 저녁 천도교 수안교구 공선원(共宣員)이자 평의원 이종숙(李宗淑)의 집에 도착한 이경섭은 수안지역 천도교 지도자들과 회합하였다. 회합에는 수안교구 교구장 안봉하(安鳳河)와 김영만(金永萬)·홍석정(洪錫禎)·홍순걸(洪淳杰) 등 전 교구장, 그리고 공선원 나찬홍(羅燦洪)과 최용식(崔鎔植), 전교사(傳敎師) 한청일(韓淸一) 등이 참석하였다. 여기서 수안지역 천도교 지도부는 이경섭으로부터 「독립선언서」 100여 매를 받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라는 지시도 전달받았다. 이에 수안의 천도교 지도부는 적극 호응할 것을 결의하였다. 3월 1일 수안교구에 성미를 제출하러 갔던 천도교 전교사 이승필(李承邲)은 나찬홍으로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그 취지를 설명하고 만세를 부를 때 조선이 독립되었다는 것을 말하라는 말과 함께 「독립선언서」 21매를 받았다. 「독립선언서」를 받아 자신이 거주하던 수구면 석달리(石達里)로 돌아온 이승필은 석달리 홀동(笏洞) 장날인 3월 7일을 기해 만세시위를 일으키고자 준비하였다. 시위 당일 홀동 장터에서 이승필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주민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또한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시위로 붙잡혀 1919년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되었다. 상고에서 “민족자결주의와 관련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주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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