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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경

金春京

1885. 3. 27 ~ 1944.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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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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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槐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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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괴산군 청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85년 3월 27일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청안면(淸安面)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괴산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청안면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9일 읍내리에서 먼저 시도했으나, 일본 경찰에 의해 초기에 진압되었다. 이후 읍내리의 이태갑(李泰甲) ·장성원(張聖源), 신강면(辛康勉) ·김수백(金壽伯)(일명 (金壽福)) ·박순옥(朴巡玉)(일명 (朴來明)) ·함재원(咸在源)의 주도로 대규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들은 만세시위 거사일을 청안장터 장날인 3월 30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준비하여 비밀리에 면내 각 마을에 배포하였다. 이들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서 읽은 후,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태갑·장성원 등과 3월 30일 오후 3시경 청안장터로 나와 시장의 사람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 시위를 시작하였다. 사전에 만세 시위에 참여할 것을 결의한 사람들과 시장에서 이 광경을 목격하고 공감한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시장 곳곳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면서 진압을 위해 시위대의 선두에서 있던 유웅렬(劉雄烈) 등 7명을 주재소로 연행하였다. 이에 시위대 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가서 연행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일제 경찰은 오히려 이홍균(李弘均) ·김종규(金鍾奎) 등을 추가로 체포하면서 위압적인 자세로 해산을 강요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시위 군중과 함께 “무슨 이유로 무슨 죄로 인민을 체포하는가. 바로 석방함이 마땅하다”고 일제 경찰에 고함을 치며 더욱 강력하게 석방을 요구하였다. 거듭된 석방 요구에도 일제 경찰이 불응함에 주재소를 공격하자는 김명진의 지휘에 따라 시위대의 선두에서 주재소에 돌을 던져 창문을 깨뜨리고, 주재소 안으로 진입하여 유리창 및 각종 기물 등을 파손시켰다. 이에 일제 경찰은 충주에서 파견된 헌병대과 합세하여 무력으로 만세시위를 해산시켰다. 당시 일제 경찰과 헌병대의 발포로 노도원(盧道元) 등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고, 많은 사람들이 붙잡혔다. 이때 김명진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7월 15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와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는데, 그 해 8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그대로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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