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金轍洙1878. 9. 9 ~ 1919. 4.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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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78년 9월 9일 충청북도 옥천군(沃川郡) 청산면(靑山面) 예곡리(禮谷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청산면 만세시위때 일제 헌병에게 희생되었다. 청산면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하순부터 시작되어, 26일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수백 명 군중이 집결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해산하였다. 이어 청산소학교(靑山小學校) 학생들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으나 한국인 교사 성기호에게 사전 발각되어 성사되지 못하였다. 일제는 헌병수비대 20여 명을 청산주재소에 배치하며 낮부터 공포탄을 쏘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여 만세시위를 금압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공포 분위기에서도 고한주(高漢周), 김한주(金漢洲)를 중심으로 새로운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이에 안병하(安秉夏)·안대봉(安大鳳)·최남석(崔南錫)·박재호(朴在浩)·박동희(朴東羲)·손일만(孫一萬)·김지수(金芝洙)·신업이(申業伊)·김인수(金仁洙)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청산시장 장날이었던 4월 2일 저녁 고한주 등의 지휘에 따라 가죽나무재(현재의 (校平里) 입구)에서 백운리(白雲里), 교평리, 지전리(芝田里) 등의 인근 마을 주민 500여 명을 소집하여 일제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광목에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면사무소가 있는 지전리의 만리방천(萬里防川) 둑으로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청산장터로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청산면은 옥천군으로 통폐합되기 전 청산군(靑山郡)의 군소재지로 청산시장은 보은군(報恩郡), 영동군(永同郡) 등에서도 장꾼들이 모이는 규모가 큰 장터였다.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인근 10리 내외의 7~8개 마을 청년들이 만세소리를 듣고 청산시장에서 합류하였고, 청성면(靑城面), 보은군의 마로면(馬老面), 삼승면(三升面)과 영동군의 용산면(龍山面) 등에서 시장에 나온 장꾼들까지 합세하여 대규모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대규모 만세시위에 일제 헌병들은 해산을 명령하면서 당시 청산면에 거주하던 5~6호의 일본인들을 청산주재소로 피신시켰다. 해산을 강요하는 일제 헌병에 대항하여 만세시위대와 함께 청산주재소로 행진해서 격렬한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이에 당황한 일제 헌병들이 만세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하였고, 이때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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