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헌
金昌憲1877. 6. 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양구군 양구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877년 6월 9일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동면(東面) 팔랑리(八郞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양구군 양구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인으로서 1919년 당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3월 말 양구면 용호리(龍湖里)에 사는 정승원(鄭昇源), 함춘리(含春里)에 사는 최우명(崔遇明)과 김병하(金炳夏) 등의 천도교 지도자들이 독립만세 시위 준비에 나서 대형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가 쓰인 깃발을 제작하는 등 시위 준비를 한다는 소식을 듣자, 이를 같은 면에 사는 천도교인에게 알려 참가를 독려하는 일을 맡았다. 거사 날짜는 4월 5일로 정하였는데, 양구면의 장날인 4일과 9일을 피하고, 굳이 5일을 택한 것은 일제 헌병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천도교 지도자들은 4월 5일 시위 계획을 세운 후, 그 때까지 비밀이 새어나갈 것을 우려해 다시 4월 2일로 날짜를 당겨 잡았다. 이에 함춘리의 최영구(崔榮九), 팔랑리의 김명옥(金明玉) 등이 천도교인에게 변경 사항을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4월 1일 밤부터 때 아닌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다시 시위 날짜를 하루 늦추어 3일로 결정하였다. 시위 날짜를 자주 변경했음에도 발각되지 않았던 것은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시위를 계획하고 연락을 취했기 때문이다. 시위 당일인 4월 3일 양구군청이 자리한 양구면 죽곡리(竹谷里)에는 수십 명의 천도교인이 결집하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양구군청 앞으로 행진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를 주도한 천도교인 대부분은 이 자리에서 붙잡혔다. 이때 정승원·최우명·김병하·최영구·김명옥 등 18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 밖에도 양구면 용호리에 사는 박의순(朴義淳), 대동리에 사는 엄건섭(嚴建燮)과 조돈민(趙敦敏) 그리고 동면 팔랑리에 사는 장흥도(張興道)와 장호면(張鎬眠), 동수리에 사는 최기호(崔寄浩) 등이 포함되었다. 이 중 12명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1919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그러나 그 해 6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고,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