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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영

金昌英

1878. 5. 2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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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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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풍산(豊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풍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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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풍산군 이인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878년 5월 20일 함경남도 풍산군(豊山郡) 안산면(安山面) 노은리(老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다가 풍산군 이인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풍산군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4일 천도교 풍산교구에서 주도하여 일어났다. 풍산군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갑산군(甲山郡)의 이인면(里仁面)·웅이면(熊耳面)·천남면(川南面)과 북청군(北靑郡)의 안수면(安水面)·안산면을 합쳐 새롭게 만들어진 곳이다. 1919년 당시에는 옛 갑산지역과 옛 북청지역은 역사적, 지역적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풍산군의 만세시위는 풍산이라는 지역성보다는 천도교라는 종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천도교 풍산교구와 지역의 천도교인들이 만세시위의 중심이 되었다. 1919년 3월 10일 이인면 원포리(院浦里)에 있는 김병식(金炳軾)의 집에서 천도교 풍산교구의 봉훈(奉訓) 맹시정(孟始楨)과 강희준(姜熙俊)이 모였다. 강희준은 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주도로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다는 사실과 서울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였다. 이에 김병식과 맹시정은 바로 풍산지역 천도교의 중심인물인 박인진(朴寅鎭)을 김병식의 집으로 초대하여 4인이 함께 풍산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에 대해 논의하고, 3월 14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14일 이인면 신풍리(新豐里)에 있는 천도교 풍산교구에 천도교인들이 모였다. 이날 모임에 같은 천도교도로서 풍산교구 교구장 주병남(朱炳南)과 박인진·맹시정·강한철(姜漢掇)·주의락(朱義洛)·장세급(張世岌)·주두칠(朱斗七)·주진표(朱鎭豹)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천도교당에는 노은리에서 참석한 이들을 포함하여 200여 명이 모였다. 먼저 이들은 함께 조선의 독립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김창선(金昌善)과 박인진의 연설을 들은 후,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천도교당 안으로 진입한 경찰들이 교당 안에 있던 천도교인들을 강제로 해산시키려 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천도교인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헌병분견소 앞까지 행진하였다. 헌병들이 몽둥이와 칼을 사용하여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였다. 이에 격분한 시위대는 헌병분견소 안으로 진입하여 기물을 부수고 병기를 탈취하려 하였다. 그 과정에서 헌병들의 발포가 시작되었다. 이날 시위 과정에서 사망자 2명과 부상자 10여 명이 발생하였다. 만세시위는 오후 4시까지 전개되었다. 이 일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던 인물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8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10월 2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당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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