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
金昌奎1892. 6. 6 ~ 1949. 5.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고창군 고창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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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2년 6월 6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고수면(古水面) 은사리(隱士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고창면(高敞面) 읍내리(邑內里)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다가 3월 21일 고창군 김승옥(金升玉)·오동균(吳東均) 등이 주도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8일 면사무소 서기 김승옥이 사무소의 등사기를 이용하여 등사한 「독립선언서」, 『국민휘보(國民彙報)』, 「조선독립창가」 등의 인쇄물을 배포해달라는 부탁을 승낙하였다. 이날 밤 오동균과 함께 읍내 유지 김동옥(金東玉)의 집에서 김응권(金應權) 외 8명에게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창가」를 배포했다. 배포와 함께 3월 19일 장날을 이용하여 고창에서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를 일으키자고 권유하였다. 3월 19일 계획했던 시위가 준비 부족과 일본 경찰의 감시로 인해 이틀 후인 3월 21일로 연기되었다. 3월 21일 오전 11시에 오동균·김승옥 등과 함께 고창면사무소 앞에서 100여 명의 군중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일본 경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만세시위대의 규모는 계속 커져 마침내는 500여 명의 군중이 군청까지 행진했고, 고창군수와 군청 직원들에게까지도 독립만세시위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이때 긴급 출동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3일 광주지방법원 정읍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항소하였다. 같은 해 5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같은 형량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7년부터 1928년까지 고창농민조합에 가담하여 활동했으며, 고창면지부 위원 등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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