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호
金瓚鎬1885. 1. 2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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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1885년 1월 25일 강원 김화군(金化郡) 통구면(通口面) 통현리(通縣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으로 1919년 3월 특사로 활동하였다. 천도교중앙총부(天道敎中央總部)는 1919년 만세운동을 준비하면서 안상덕(安商悳)을 통해 함경도와 강원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안상덕은 2월 28일 천도교 평강교구에 「독립선언서」 700매를 전달했다. 이를 전달받은 평강 천도교구장 이태윤(李泰潤)에게 서울 상황을 살펴보라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이에 서울로 가서 당시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후 이태윤이 철원과 김화교구에 연락하여 3월 1일 평강교구에서 대책 회의를 열고 있던 도중 서울에서 돌아와 만세시위 상황을 보고했다. 이 대책 회의에서는 강원 각 지역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할 책임자를 정하였다. 철원군은 천도교 교훈(敎訓) 최병훈(崔炳勳)이 200매를, 김화군은 채장숙(蔡章淑)이 150매를 전달하되 그중 90매는 화천(華川) 교구에 전달을 지시했다. 회양군은 김천일(金千鎰)이 120매를 전달하되 그중 일부를 통천군에 전달하고, 이천군은 장선경(張善慶)이 15매를 배포하고, 춘천군에는 임종한(林宗漢)과 신윤철(申允喆)이 150매를 전달하도록 하였다. 각 군에 분배한 독립선언서는 춘천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 배포되었다. 1919년 3월 평강군과 김화군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당시 천도교 전제원(典制員)으로서 2월 28일 교구장 이태윤으로부터 「독립선언서」 배포를 의뢰받고 권병식(權秉植)·전용섭(全容燮) 등 교도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평강과 김화군 일원에 붙이거나 배포하도록 지시하였다. 3월 초 「독립선언서」 배포에 참여한 대부분 천도교인들은 곧바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만세시위에서 직접 활동은 불가능하였으나, 지역마다 만세시위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기여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배포한 혐의로 붙잡혀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 해 4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만 취소되었을 뿐 형량은 동일하게 선고하였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5월 2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당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1921년 3월 28일 천도교 평강교구장으로서 중평리 성화실에서 천도교인 12명에게 ‘인내천(人乃天)’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하였다. 강연에서 “우리 조선은 일본의 압박을 받음으로 봄은 왔으나 푸른 빛은 볼 수 없으니, 우리 동포는 천도교를 믿고 자녀를 교육하여 건전한 국민을 양성하는데 힘써 조선의 국권을 회복하고 조선 사람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였다. 이 일로 다시 붙잡혀 1921년 6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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