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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贊錫

贊錫

186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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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贊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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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수안(遂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수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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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6)

관련 사건

  • · 수안군 수구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6) 1862년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수구면(水口面) 군치리(軍峙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수안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0년 천도교 교구가 설치된 수안군은 주변의 곡산군 등과 함께 황해도 동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천도교의 중심지였다. 1914년 대교구제가 실시되자 곡산교구, 신계교구 등과 함께 서흥대교구 산하에 편제되었다. 이러한 지역적 연관으로 수안군의 만세시위는 천도교 곡산교구 교훈 이경섭(李景燮)이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경섭은 2월 28일 천도교 중앙총부의 『천도교회월보(天道敎會月報)』 과장 이종일(李鍾一)로부터 황해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라는 명을 받았다. 이에 이경섭은 서흥교구 교구장 박동주(朴棟周)를 만나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3월 1일 저녁 수안교구 공선원(共宣員)이자 평의원인 이종숙(李宗淑)의 집으로 왔다. 이종숙의 집에서 이경섭과 수안교구 교구장 안봉하(安鳳河), 그리고 김영만(金永萬)·홍석정(洪錫禎)·홍순걸(洪淳杰) 등 전 교구장, 공선원인 나찬홍(羅燦洪)과 최용식(崔鎔植), 전교사(傳敎師) 한청일(韓淸一) 등 수안지역 천도교 지도자들이 모였다. 이 모임에서 서울에서 3월 1일 만세시위를 준비하고 있으니 수안지역에서도 「독립선언서」를 군내에 널리 배포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라는 이종일의 명과 함께 「독립선언서」 100여 매가 전해졌다. 이에 수안의 천도교 지도부는 적극 호응할 것을 결의하였다. 3월 1일 성미를 제출하러 수안교구에 갔던 천도교 전교사 이승필(李承邲)은 천도교 지도부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 자신이 거주하던 수구면 석달리(石達里)로 돌아와 석달리 홀동(笏洞) 장날인 3월 7일을 기해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3월 2일 다시 모인 수안의 천도교 지도부는 3월 3일 만세 시위를 일으킬 것과 그 실행 방법은 홍석정과 한청일이 담당할 것 등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사전에 수안헌병분대에 탐지되어 안봉하를 비롯한 김영만·나찬홍 등 11명이 붙잡혔다. 지도부의 체포에도 불구하고 3월 3일 수안읍에서는 홍석정·한청일 등 천도교인들의 지도로 세 차례의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각각 100여 명이 넘는 군중이 참여한 만세시위는 수안헌병분대 앞마당까지 진출하였고, 일부는 헌병분대로 돌진하여 문간에 설치된 장애물을 제거하고 헌병대의 퇴거를 강경하게 요구하였다. 그 과정에서 헌병분대가 발포하였고, 2차와 3차 만세시위에서 9명의 사망자와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수구면 석달리 장날인 1919년 3월 7일 이승필의 주도로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날 땔나무를 지고 장터에 나갔다가 주민들과 함께 참여하여 만세를 부르다가 붙잡혔다. 이로 인해 1919년 5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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