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룡
金燦龍1896. 5. 20 ~ 1950. 7.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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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6년 5월 20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군) 장정리(長井里)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부안이고, 이명으로 김찬용(金贊用), 김찬용(金澯用), 김상배(金相培) 등을 사용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 이두하(李斗夏), 남계창(南啓昌), 남상직(南相直), 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雲), 강태완(姜太玩), 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대호지면 면사무소 앞에 집결한 주민 600여 명에게 면장 이인정은 집결시킨 실제 목적은 도로 보수가 아니라 독립만세운동이라고 연설하였다. 이에 공감한 많은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동참할 때, 동지들과 함께 만세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며 7km 떨어진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천의장터로 가는 도중 상당한 주민들이 대열에 합류하였고, 천의장터에서는 정미면 주민들까지 합류하여 시위대의 숫자는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이때 이들의 선두에서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일본 경찰은 이와 같은 대규모 만세시위 소식을 접하고, 천의주재소의 경찰력만으로는 만세시위 진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당진경찰서에 응원을 요청하였다. 응원 병력이 천의장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위군중이 시위를 마무리하고, 주변의 음식점으로 분산되어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이 중 한 무리에서 대형 태극기를 발견한 일본 경찰이 그것을 빼앗으려 하다가 격렬한 저항에 당황하여 만세시위대에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자, 시위대는 분노하여 천의주재소로 달려갔다. 송재만의 지휘에 따라 김길성(金吉成), 김부복(金夫卜), 김장안(金長安), 김팔윤 등 다른 선봉 행동대원들과 함께 선두에서 일본 경찰을 구타하고 돌을 던져 시설과 기물을 부수는 등 주재소를 파괴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제2차 봉기를 기약하고 해산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직후 붙잡혀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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