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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제

金次濟

1871. 9. 7 ~ 1941.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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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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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7)

관련 사건

  • · 홍성군 장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7) 1871년 9월 7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장곡면(長谷面) 화계리(花溪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화선(金化先)을 사용하였다. 1919년 홍성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홍성군 장곡면에서의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4일 윤형중(尹衡重)·윤익중(尹益重)·(世重)·윤낙중(尹樂重) 3형제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가족과 마을 주민들을 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설득하여 4월 4일 화계리, 광성리(廣城里)·신풍리(新豊里)의 주민 100여 명과 매봉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만세 시위를 일으켰다. 윤씨 3형제가 주도한 만세시위에 영향 받은 가송리(佳松里)의 김동하(金東河)·(東化)는 그 뒤를 이어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에 공감하여 김용제(金用濟)·김동완(金東完)·김용숙(金容肅)·이화춘(李化春)·한상철(韓相喆) 등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7일 화계리 주민들을 마을 앞산에 모이도록 하고, 이 자리에서 독립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호응하자,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 소재지인 도산리(道山里)로 행진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합류한 광성리, 가송리의 주민들과 함께 면사무소의 뒷산인 응봉산에 올라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상철이 일제 만행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고 독립선언문의 취지를 설명하였다. 이에 주민들은 북을 치면서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규탄 집회를 마친 뒤 김동하의 지휘에 따라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김동하가 “면사무소 직원이 한명도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하여 면사무소를 부수라고 외치며 솔선하여 투석하였고, 이에 선두에서 투석하였다. 곧이어 다른 주민들도 면사무소 공격에 동참하여 돌과 몽둥이 등으로 정문 기둥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뜨리는 등 면사무소의 각종 시설, 기물, 문서 등을 파괴하였다. 다음날인 4월 8일 밤 11시 경 전날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주민 60여 명과 함께 도산리에 모여 면사무소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였다. 이날의 시위 직후 출동한 일본 경찰에 붙잡혀 1919년 5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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