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金鎭浩1891. 9. 25 ~ 1945. 7.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정읍군 태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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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1년 9월 25일 전라북도 정읍군(井邑郡) 태인면(泰仁面) 태흥리(太興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 운동운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6일 태인 장터 만세운동은 고종의 국상을 앞두고 서울을 다녀온 태인면 출신의 청년 김현곤(金玹坤)·송수연(宋洙連)·박지선(朴址宣) 등이 주도하여 계획하였다. 이들은 서울에서 전라도 출신 인사인 김성수(金性洙)·송진우(宋鎭禹) 등을 만났으며, 그들로부터 서울에서 독립선언이 예정되어 있음을 전해 들었다. 독립선언서를 지니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은 태인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과 접촉하며 거사에 함께할 뜻있는 주민들을 규합하였다. 이때 송한용(宋漢鏞)·송진상(宋鎭相)·오석흥(吳錫興)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들은 면사무소 서기로 일하던 김현곤을 중심으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3월 16일 태인장날에 시위를 일으킬 준비를 하였다. 1919년 3월 16일이 되자 장터로 나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준비해 온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면사무소 부근에 있던 주민들이 만세를 선창하며 행진하기 시작하자 장터에 있던 사람들이 이에 호응하여 만세를 외쳤다. 행렬에는 학생들과 청년들을 비롯하여 상점을 닫고 나선 상인들도 참여하여 시위 군중 규모는 곧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며 군중의 기세가 강해졌지만 일제의 강압적인 제지가 심해지자 대열은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다. 출동한 일제 헌병에 붙잡혀 1919년 5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정읍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그 뒤에도 김현곤·박지선 등과 함께 항일운동을 지속하였다. 이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견원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정읍·영광(靈光)·고부(古阜) 등지를 무대로 군자금을 모으는 일에 헌신하였다고 전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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