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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鎭坤

鎭坤

1890. 7. 13 ~ 1963.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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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鎭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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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泗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사천군 곤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0년 7월 13일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 곤양면(昆陽面) 송전리(松田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사천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로 결심하였다. 3월 13일 밤 10시경 곤양공립보통학교 기숙사로 가서 생도 박계술(朴桂述)로부터 지필묵을 빌려 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 태극기를 포플러 나무에 매달아 두고 박계술·조효제(趙孝濟) 등 4명에게 자신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권유하였다. 조효제가 낮은 목소리로 2회 만세를 부르자 계단 위로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학교를 나와 ‘독립만세’라고 쓴 태극기를 주재소에 걸고 주민들을 이끌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4월 6일과 4월 19일에도 곤양공립보통학교 학생과 곤양시장의 군중과 더불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당일 주민·학생들과 함께 태극기와 깃발을 흔들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중 출동한 사천 일본 헌병분대원에게 붙잡혔다. 1919년 4월 2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60도(度)를 받았고, 검사의 항소로 이 해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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