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智貞
智貞1889. 11. 24 ~ 1948. 8.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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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889년 11월 24일 충청남도 보령시(保寧市) 웅천면(熊川面) 평리(坪里)에서 아버지 김상유(金商裕)와 어머니 서씨 사이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옥재(玉齋) 백관형(白觀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유림 대표로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하였다. 1910년 스승인 백관형과 함께 괴산의 만동묘(萬東廟) 행사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이 행사를 금지시키자, 백관형과 함께 이에 항거하였다. 이 일로 백관형이 괴산경찰서에 체포되어 보령경찰서로 이송되자 옥바라지를 하였다. 1919년 3월 백관형과 함께 광무황제 장례식에 참례하러 서울에 올라가 여관에서 고석진(高石鎭)·송주헌(宋柱憲) 등을 만났다. 이들과 함께 순종을 복위시켜 민심을 수렴하여 독립을 쟁취한다는 순종 복위 계획에 뜻을 같이 하였다. 이어 3월 5일 광무황제의 반우제를 지내고 돌아오는 순종에게 “강산도 전과 같고 궁실도 전과 같고 인민도 전과 같으니 다시 황제의 자리에 좌정하여 일국을 호령하고 각국에 통보하십시오”라는 상주문을 올렸다. 상주문은 고석진이 작성하였으며, 순종이 청량리를 지날 때 송주헌이 이를 절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송주헌이 상주문을 전달하려다가 현장에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는 바람에 실패하였다. 1919년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 일어나자 영남과 호서지역의 유학자들은 파리에서 개최되는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작성하였다. 영남 지역에서는 김창숙(金昌淑) 등 곽종석(郭鍾錫) 등이 중심이 되었으며, 호서지역에서는 홍주의병장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파리장서(巴里長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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