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지수

金芝洙

1880. 7. 11 ~ 1961. 8. 2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지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북 옥천(沃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옥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옥천군 청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80년 7월 11일 충북 옥천군(沃川郡) 청산면(靑山面) 예곡리(禮谷里) 80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옥천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청산면의 만세시위가 1919년 3월 26일부터 시작된 가운데 인정리(仁政里)에 사는 한학자 김한주(金漢洲)와 백운리(白雲里)에 사는 고한주(高漢周)는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청산시장 장날인 4월 2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이에 안병하(安秉夏)·안대봉(安大鳳)·최남석(崔南錫)·박재호(朴在浩)·박동희(朴東羲)·손일만(孫一萬)·신업이(申業伊)·김인수(金仁洙) 등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1919년 4월 2일 저녁 고한주, 김한주 등의 지휘에 따라 가죽나무재(현 (校平里) 입구)에서 백운리, 교평리, 지전리(芝田里) 등의 인근 마을 주민 500여 명이 모여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시위대는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청산장터로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외치는 ‘대한독립만세’ 소리를 듣고 인근 10리 내외의 7~8개 마을 청년들이 합류하였다. 청산시장에 도착해서는 청성면(靑城面), 보은군의 마로면(馬老面)·삼승면(三升面), 영동군의 용산면(龍山面) 등에서 시장에 나온 장꾼들까지 합세하여 시위대 규모가 더욱 커켰다. 이날 시위는 헌병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4일 4일 밤에는 김한주의 주도로 3,000여 명이 넘는 시위대가 청산면 헌병주재소를 습격하여 불태웠다. 이날도 헌병의 무차별로 사격하여 5명이 사망하였다. 이 시위에 동참하였다가 붙잡혔다. 1919년 8월 13일 공주지방법원으로부터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