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疇鉉
疇鉉1882. 10. 15 ~ 1920. 12.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청양군 정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82년 10월 15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대박리(大朴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청양 지역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청양군 정산면의 만세시위는 홍범섭(洪梵燮)을 중심으로 하여 백곡리(白谷里) 인물들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해 읽어본 홍범섭은 귀향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을 비롯해 만세시위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규합하고 정산시장 장날인 4월 5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도 준비하였다. 4월 5일 오후 3시경부터 주도자들은 정산시장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주민둘에게 나누어주며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이때 시위대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헌병들이 해산을 명령하며 홍범섭·임의재·윤석희 등의 주도자를 청양헌병분견소로 끌고가자 7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는 헌병분견소로 몰려가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이때 헌병이 해산을 종용하면서 발포하여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던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直員) 권흥규(權興圭)가 사망하였다. 다음날인 4월 6일 아침 헌병분견소에서 권흥규의 시신을 인수하여 고인의 자택으로 옮기기 위한 운구 행렬에 참여하였다. 운구 행렬의 선두에는 권영진(權寧鎭)이 쓴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는 명정(銘旌)과 다수의 만장이 줄을 이었다. 목면(木面) 안심리(安心里)에 자리한 고인의 자택을 향해 운구가 지나가는 길목의 마을마다 노제를 올리면서 많은 주민들이 운구 대열에 합류하였다. 운구 대열은 1천여 명의 규모의 시위대가 되어 독립 만세를 연창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행진하였다. 목면 입구에서 기다리던 헌병들이 발포하여 권흥규의 조카딸 최윤안(崔胤安)을 비롯한 5명이 현장에서 즉사하였다. 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1919년 4월 24일 청양헌병분견소에서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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