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훤
金鍾烜1893. 2. 1 ~ 1948. 10.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김해군 장유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3년 2월 1일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장유면 유하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해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평안북도 정주(定州) 오산학교(五山學校)에 입학하여 도산 안창호(安昌浩)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장유면(長有面) 유하리(柳下里)로 귀향하여 신문의숙(新文義塾)을 경영하였다. 1919년 2월 하순 경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하여 상경하였다가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한 후 독립선언서를 갖고 귀향하였다. 1919년 4월 11일 김승태(金升泰)·조순규(趙順奎)·이강석(李康奭)·최현호(崔鉉浩) 등과 만나 다음날인 4월 12일 장유면 무계리(茂溪里)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각기 자기 마을 사람들의 동원과 태극기의 제작을 책임, 분담하였다. 1919년 4월 12일 김승태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무계리 장터로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여러 마을에서 시위대가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장터로 모여들었다. 정오 무렵 무계리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시위대는 북을 치고 농악용 나팔을 불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선두에 서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헌병과 경찰이 출동하여 무력으로 해산시키려 하자 시위대는 헌병주재소로 몰려갔으나 헌병의 총탄에 3명이 희생되었다. 시위대와 함께 다시 헌병주재소를 몰려가 돌을 던지고 헌병들을 구타하였다. 이날 시위를 이끈 혐의로 붙잡혀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