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金鍾勳1885. 2. 2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풍산군 이인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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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1885년 2월 23일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덕성면(德城面)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에는 함남 풍산군(豊山郡) 안산면(安山面) 노은리(老隱里)에 거주하였다.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풍산군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0일부터 준비되었다. 풍산군의 만세시위를 이끈 것은 천도교인들이었다. 천도교 풍산교구의 봉훈(奉訓) 맹시정(孟始楨)과 김병식(金炳軾)은 이인면 원포리(院浦里)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강희준(姜熙俊)과 회동하였다. 이때 강희준으로부터 3월 1일 서울에서 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주도로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으며, 탑골공원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김병식은 그 날 풍산지역 천도교의 중심 인물인 천남면 동대리(東坮里)의 박인진(朴寅鎭)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4인이 함께 논의한 결과, 3월 14일을 거사일로 잡았다. 1919년 3월 14일 이인면 신풍리(新豐里)에 있는 천도교 풍산교구에는 천도교 풍산교구장 주병남(朱炳南)을 비롯하여 200여 명의 천도교인들이 모였다. 독립을 기원하는 기도를 함께 한 이들은 김창선과 박인진의 연설을 듣고 나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때 경찰들이 천도교당 안으로 진입하여 강제 해산을 시도하였다. 천도교인들은 천도교당 밖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며 헌병분견소 앞까지 행진하였다. 헌병들이 다시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자 시위대는 헌병분견소 안으로 진입하였다. 결국 헌병들이 발포하면서 2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날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혔다. 1919년 10월 23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이 확정되어 함흥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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