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태
金鍾台1897. 7. 1 ~ 1949. 7. 1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청도군 운문면 만세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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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7월 1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운문면(雲門面) 신원리(新院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청도 지역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3일에 거행된 광무황제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김상구(金相久)와 함께 상경하였다가 서울의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돌아왔다. 3월 10일 문명학교(文明學校) 교장인 김우곤(金禹坤)의 집에서 김상구 등과 만나 운문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3월 15일 손기현(孫琪鉉)과 김재화(金在華)가 “우리 동포형제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3천리 강토를 돌려받자”는 내용의 격문을 작성하자, 이것을 방음(芳音)·대천(大川)·순지(蓴池)·오진(梧津) 등지에 붙이는 일을 맡았다. 3월 18일 김상구와 김종식(金鍾軾)·손한조(孫漢祚) 등과 함께 3월 15일에 부착한 격문 때문에 운문면 대천동(大川洞)의 주재소로 불려갔다. 이들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 만세를 외치며 마을 곳곳을 행진하기로 계획한 뒤, 운문면사무소에서 ‘대한독립만세’라는 깃발을 제작하였다. 다시 거리에서 김상구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면서 깃발을 들고 앞장섰다. 3월 20일 헌병과 경찰이 대대적인 검거를 실시하면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고 항소하였다. 그 해 7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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