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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식

金鍾湜

1883. 8. 16 ~ 1959.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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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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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任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임실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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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임실군 둔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3년 8월 16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신기리(新基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23일 임실군 둔남면 오수리 장날에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이만의(李萬儀) 등이 주도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오후 2시부터 같은 마을 출신 김종윤(金鍾閏)과 함께 시위에 나섰다. 주도자인 이기송이 경찰관주재소로 끌려가자 8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석방을 요구하였다. 결국 일본인 순사 무라이(村井邑次)는 이기송을 석방하였고 2,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이때 일본인이 경영하는 상점을 파괴하고 면사무소로 달려가 면장과 면서기를 끌어내 만세를 부르도록 하는 일에 가담하였다. 시위대가 다시 경찰관주재소로 진입해 유치장의 유리창을 부수고 구금되어 있던 나머지 사람들을 풀어줄 때도 앞장섰다. 당일 저녁 남원(南原) 헌병분대와 임실경찰서에서 출동한 헌병과 경찰이 발포를 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후 시위 주도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27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요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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