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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金鍾洙

186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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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종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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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全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전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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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4)

관련 사건

  • · 군산부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4) 1860년 전라북도 전주군 고산면 신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옥구군(沃溝郡) (현 군산시) 나포면(羅浦面) 주곡리(酒谷里)에 주소를 두고 있었으며 천도교 교인이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천도교구로부터 전주(全州) 천도교구실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익산(益山) 교구실의 박영진(朴永鎭)은 교구 임원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옥구군의 교인이었으므로 같은 지역의 노춘만(盧春滿)·신현성(申鉉成)·최공훈(崔公勳) 등과 함께 참석하여, 기독교 측에도 연락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거사일은 3월 6일 군산 장날로 정하고 옥구군 개정면(開井面) 구암리(龜岩里) 기독교회의 부속학교인 영명학교의 등사판을 이용해 선언서 7천 장을 등사하였다. 이 일에 가담한 영명학교 교사 박연세(朴淵世)·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 등이 군산경찰서로 연행되자 교사 김윤실(金潤實)과 학생들은 거사일을 하루 앞당겨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1919년 3월 5일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구암리에서 군산 시내 방향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만세시위 대열에 동참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며 선언서를 배포하였다. 군산에 도착하면서 5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군산경찰서 앞 등 각처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시위대가 해산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3월 17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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