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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濟石

濟石

1886. 9. 3 ~ 1960.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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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濟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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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86년 9월 3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덕정리(德井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홍성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한 가산리(佳山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은 서로 협의하여 금마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심하였다. 그 직후 이들은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을 끌어들여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민영갑 등은 4월 1일 가산리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임시 연극공연장을 설치하고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이때를 기회로 삼기로 계획하였다. 4월 1일 민영갑 등 주도자들은 연극 관람을 가장하고 이원교의 집으로 갔다. 이들은 연극이 끝날 무렵인 오후 8시 경 일제히 독립 만세를 선창하면서 관객으로 온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들의 호소를 듣고, 수십명의 주민들이 동참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에 대한 급보를 접하고 일본 경찰이 출동하였으나. 이날의 시위는 체포자 없이 해산되었다. 민영갑·이재만 등은 다음날인 4월 2일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과 함께 홍성시장으로 가서 다시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홍성시장에서 이들의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이에 동참하라는 호소에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혔다.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 즉결처분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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