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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在華

在華

1897. 6. 17 ~ 195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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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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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淸道)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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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청도군 운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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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6월 17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운문면(雲門面) 신원동(新院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청도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청도군에서는 1919년 3월 11일부터 5월 초순까지 7차례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운문면에서는 김종태(金鍾台)와 김상구(金相久) 등 문명학교(文明學校) 졸업생들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들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상경했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는 운문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듣고 3월 15일 손기현(孫琪鉉) 등과 함께 “우리 동포 형제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3천리 강토를 돌려받자.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는다. 우리 동포 형제는 어째서 이다지도 조용한 것인가. 이때가 어느 때인가. 한 번 분투하자.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피와 피, 대한독립만세”라는 내용의 격문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이 격문 20여 매를 방음(芳音)·대천(大川)·순지(蓴池)·오진(梧津) 등지에 부착하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1919년 3월 17일 김상구(金相久)·김진효(金鎭孝)·손한조(孫漢祚)·김용구(金龍久)·홍해성(洪海性)·김종식(金鍾軾)·김종수(金鍾秀) 등은 문명학교에 모여 만세운동을 결의하였으나, 대부분은 이튿날 운문주재소로 불려갔다. 3월 15일 부착한 격문에 대해 조사받기 위해서였는데, 이들은 돌아가는 길에 만세시위를 단행키로 하고 운문면사무소로 갔다. 이때 윤병림(尹炳林) 등과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우선 김종태가 2자(尺) 길이의 명주 수건에 ‘대(大)’자를 쓰고, 김진효의 종용에 따라 4명의 면서기가 각각 ‘한(韓)’, ‘독(獨)’, ‘립(立)’, ‘만(萬)’ 자를 쓴 다음, 또 다른 인물이 ‘세(歲)’ 자를 쓰고, 이어서 김종태가 ‘독립회(獨立會)’라고 적음으로써 ‘대한독립만세’ 깃발이 만들어졌다. 김진효의 만세 선창으로 시작된 운문면의 만세시위는 대천리와 공암리 주민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 대천리의 박정찬(朴廷瓚)·박재영(朴在永) 등이 이에 동조하였고, 공암리의 박영묵(朴永默)·김문근(金文根)·최성희(崔聖熙) 등도 주민들과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20일 대구 헌병분견대와 청도경찰서가 만세시위 주도자들에 대한 체포에 나섰고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그 해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1년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1919년 7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자 다시 불복하고 상고하였다. 1919년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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