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
金在浩1900. 8. 20 ~ 1969. 9.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동래군 범어사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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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900년 8월 20일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양북면(陽北面) 호암리(虎岩里)에서 태어났다.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북면(北面) 범어사(梵魚寺)의 지방학림(地方學林)에서 수학한 승려로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만세운동 직후 한용운(韓龍雲)의 지시로 불교중앙학림 학생들이 범어사 승려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러 왔을 때 시국에 관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3월 17일 범어사에서 개최된 지방학림과 명정학교(明正學校) 졸업생 송별회에서, 승려들과 범어사 부속학교인 지방학림 학생들은 장날인 3월 18일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 계획이 누설되어, 3월 18일 새벽 1시경 주도자들인 김영규(金永奎)·차상명(車相明)·김상기(金相琦)·김봉한(金奉煥) 등이 일제 군경에 붙잡혀 갔고, 거사를 준비 중이던 학생들은 강제 해산되었다. 그러나 두 학교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고 만세시위를 감행하였다. 이근우(李根雨)·김해관(金海管)·박재삼(朴在森)·신종기(申鍾驥)·윤상은(尹相殷)·박영환(朴永煥) 등과 함께 3월 18일 밤 동래읍 서문 근처에서 남문으로 향하면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3월 19일 아침에도 학생들과 함께 동래시장에서 유인물을 뿌렸고, 시장을 나서 동래경찰서를 향하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오후 5시경까지 시위를 이어갔다. 일제 군경의 진압으로 시위대는 해산되었고, 이 과정에서 시위를 주도한 승려들을 비롯하여 학생 34명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이근우·김해관·양수근·신종기·윤상은 등과 징역 6월을 받았다. 함께 시위를 주도한 김영규는 징역 2년, 김상기·김한기는 징역 1년, 김영식·박재삼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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