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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在緯

在緯

1884. 2. 13 ~ 1926.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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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在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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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金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김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김천군 용두동 만세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4년 2월 13일 경상북도 김천시(金泉市) 교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천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초순 김천의 황금동 장로교회 조수 김충한(金忠漢)은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3월 8일 김천의 황금동교회에서 대구 학생단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던 김수길(金秀吉)을 비롯하여 자신들의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3월 9일 밤, 이들은 황금동교회에서 독립운동 격문 작성과 인쇄, 인쇄물 배포 등을 분담하고, 옥양목으로 된 태극기와 종이 태극기를 만든 다음 만세운동 대표로 김충한과 최용수(崔龍洙)를 지명하고, 장날인 3월 11일 오후 3시를 거사일로 정하였다. 장소를 용두동 감천다리 부근으로 정한 후 황금동 한상태(韓相泰)의 집으로 가서 김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에게 태극기와 격문, 인쇄물을 나누어 주면서 많은 참여를 독려하였다. 김천공립보통학교 학생 석동준(石東俊)은 같은 학교 김종호 등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면서 참가를 독려하였고, 한명수(韓明洙)는 교동의 교회로 갔다. 이때 한명수로부터 김천에서 3월 11일 오후 3시 만세운동을 일으킬 계획이니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고 승낙하였다. 황금동 교회 신자들은 각 면의 교회 신도들을 조직적으로 참가시키기 위하여 책임 지역을 분담하여 활동을 하였다. 3월 10일 금릉면(金陵面) 교동 지역 책임을 맡아 그곳 교회를 찾아가 허학선(許學善)을 비롯한 2명에게 3월 11일의 거사 참여를 권유하였다. 3월 11일 격문을 등사한 등사기를 김천 저축계 사무실로 옮기던 중, 이를 미행하던 일제 경찰에 원고지를 압수당하고 황금동교회에 있던 주도 인물 4명이 체포되고 말았다. 이때 함께 붙잡혀 만세시위는 불발되었다. 1919년 5월 5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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