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천
金昌天1896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의군부(義軍府)
- ·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 · 참의부(參議府)
- · 국민부(國民府)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황해도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6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김창천(金蒼天)이다. 1920년대 초부터 만주지역에서 항일 무장투쟁에 나섰다. 1923년 6월 의군부(義軍府) 제1중대 제3소대장으로 평안북도 의주군 청선진(淸城津)의 주재소·세관출장소·우편소·면사무소 공격을 주도하였다. 당시 만주지역은 독립운동에 대한 방향성 및 이념 갈등 문제로 어수선했고,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결하여 이를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이에 1923년 8월 군사와 민정을 관할하는 새로운 조직으로 참의부(參議府)가 설치되었고, 당시 제5중대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924년 참의장 백광운(白狂雲) 등이 피살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1924년에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의용군 제5중대 제1소대장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6월 27일 개원현(開原縣) 청하구(淸河辯) 왕과성(王菓城) 방면을 통과하는 중국 기병 30여 명에게 공격을 받아 상등병 김보현(金寶賢)을 비롯한 부하 3~4인과 함께 교전하였다. 1924년 6월 29일 오두영(吳斗永)·조박빈(趙暴濱)·이상경(李相慶)·윤기오(尹箕五)·윤기조(尹基祚)·곽동일(郭東一)·박창근(朴昌根)·김일하(金一河)·이성도(李聖道) 등과 함께 제5중대 대표로서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일치할 것을 여러 단체에 촉구하는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1924년 겨울 참의부 제5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3월 집안현 고마령(古馬嶺)에서 국내진입을 위한 작전회의 중 일제 경찰의 기습으로 참의장 최석순 이하 29명이 전사하였다. 게다가 6월에는 만주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한인 무장 독립운동단체를 토벌하기 위해 일제와 중국 측 사이에 미쓰야협정(三矢協定)이 체결되어 독립운동이 위축되었다. 이에 1926년 다시 참의부가 개편되어 유격대장을 맡았다. 1929년 4월 정의부에 신민부와 참의부의 잔류인사가 통합되면서 국민부(國民府)가 발족했고, 1933년에는 혁명군 제1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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