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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락

金鍾洛

1911. 8. 9 ~ 195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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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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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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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강계(江界)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강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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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5)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5) 1911년 8월 9일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이서면(吏西面) 등공리(登公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건중공립보통학교(乾中公立普通學校)를 수료하였다. 1925년 서울 협성학교(協成學校) 초등과 제2부를 졸업한 후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에 다녔다.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배재고등보통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15일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시위에 참가하였다. 이틀 후인 1월 17일 ‘적혈단심(赤血丹心), 일치단결(一致團結), 파괴장애(破壞障碍), 시위만세(示威萬歲)’라고 혈서로 쓴 깃발을 흔들며 500여 명의 학생들 앞에서 시위 참여를 호소하였다. “배재의 건아들아! 좀 더 원기를 내어 만난을 배제하고 일치단결로 장애를 돌파하여 시중에 뛰쳐나와 시위행렬 운동을 실행하자. 이 혈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자유 만세를 고창할 지어다”라고 외치며 수차례 만세를 불렀다. 이후 선두에 서서 학생들을 이끌고 교문 밖으로 나가 종로로 진출하려 했으나 미리 잠복하고 있던 일본 경찰들의 제지를 받고 붙잡혔다. 이로 인해 1930년 4월 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같은 해 12월 27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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