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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金禎顯

1903. 1. 24 ~ 1964.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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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정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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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중국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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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의열단
  • · 신민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의열단의 자금모집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3년 1월 24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풍북면(豊北面, 현 안동시 풍산읍) 현애동(玄崖洞)에서 김태동(金台東)의 3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이명은 김장현(金章顯)·김재현(金在顯)이다. 의열단(義烈團) 간부이고 독립운동가인 김시현(金始顯)의 20세 아래 친동생이었는데, 후일 출계(出系)하여 재종숙(再從叔) 김세동(金世東)의 계자(繼子)가 되었다. 1919년 서울에서 숙부 김의동(金宜東)의 집에 유숙하며 휘문고보(徽文高普)에 다니고 있던 중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학업을 그만두었다. 1922년 가을 서울에서 권총 1정과 탄환 3발을 김시현에게서 받아 보관하고 있다가,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기로 한 의열단원 류병하(柳秉夏)에게 넘겨주었다. 1923년 1월 소련의 모스크바비행학교에 입학하고자 출국하여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갔다가 황옥(黃鈺)의 소개로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을 처음 만났다. 1923년 3월 김시현은 의열단의 제2차 국내 일제기관 총공격 계획을 진두지휘하며 폭탄 36개를 서울로 밀반입시킨 혐의로 거사 실행 전에 일경에 붙잡혔다. 이에 동년 6월 형인 김시현의 복수를 위해 폭탄을 보내줄 것을 김원봉에게 편지로 요청하였다. 같은 달, 베이징에서 김원봉·구여순(具汝淳) 등과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고, 1924년 봄에 일본 도쿄(東京)에서 크게 벌일 암살·파괴 거사용 자금 3만원을 조달할 방안에 관해 의논하였다. 그때 제의하기를, 전에 김시현이 서울 익선동(益善洞)의 친지 모씨(某氏)에게 군자금 5만원 제공을 요청했더니 1만원만 주기에 안 받았던 것을 이제라도 찾아가 받아내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북만주(北滿洲)의 닝쿠타(寧古塔)에 있는 권재만(權在萬, 이명 권동산(權東山))이 서울에 숨겨둔 권총을 사용할 수 있도록 양건호(梁建浩, 본명 이종암(李鍾岩))와 함께 입국토록 하면, 서울로 들어가서 두 사람과 행동을 같이하겠다며 특파원을 자청하고 1923년 12월 19일 베이징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도중에 신의주경찰서에 연행되어 조사받았는데, 잡아떼고 실토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의열단원임이 간파되어 미행당한 끝에, 서울 도착 다음날인 12월 22일 종로경찰서원에게 붙잡혔다. 1924년 1월 25일 예심 종결과 더불어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기소되었고, 동년 2월 28일 징역 8월을 받았다. 그러자 법정에서 재판장 앞으로 나가 고함치며 항의하였고, 퇴정하여 자동차에 오를 때도 만세를 부르고 간수들과 격투를 벌이는 등 끝까지 투쟁하였다. 1924년 10월 만기 출옥하여 다시 베이징으로 갔고, 1925년 북만주 신민부(新民府)의 성동사관학교(城東士官學校)에 들어가 수료한 후 독립군 간부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 후 일본군에 붙잡혀 처형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공식 기록으로는 1964년 10월 29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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