魯植三
植三1878 ~ 1908. 7. 10
관련 단체
- · 김태지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4) 1878년 출생하였다. 1908년 7월 전라남도 광양군(光陽郡) 금직천(錦織川)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전남 광양 사람으로 추정된다.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일제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맺어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마저 해산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식민지화 과정은 곧바로 항일 의병항쟁을 촉진, 전국적으로 이른바 ‘후기의병’이 고양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해산 군인의 항전은 서울의 시위대로부터 시작되어 원주·강화·홍주·진주진위대로 확산되었다. 이들은 각기 의병에 가담하여 의병의 전력을 강화시켰다. 호남의병은 전국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군경과의 교전횟수와 교전의병, 그리고 희생자 수에서도 호남의병은 단연 많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1907년 11월 이인영(李麟榮)·이은찬(李殷瓚)·허위(許蔿) 등은 전국 연합의병의 성격을 갖는 13도창의군을 결성하였다. 13도창의군은 허위의 선발대가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하는 서울진공작전을 결행하였으나 일본군의 선제공격으로 패산하고 말았다. 그 후 의병들은 각자의 근거지로 돌아가 항일전을 수행하였다. 이때 충청도에서 내려와 광양·하동 일대에서 활동하던 김태지(金泰知)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십장(什長)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에 들어 경기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확산되고 치열해지자, 일제도 이에 대응하여 토벌대를 더욱 강화하였다. 5월 일본에서 보병 제23연대와 제27연대를 조선에 증파하여 수비대의 병력을 보강하는 한편, ‘토벌’의 효율을 기하려고 군대·경찰·헌병을 조선 주둔 사령부가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체제를 취하였다. 1908년 7월 10일 광양군 오룡면(五龍面) 일대에서 동료의병 장재만(張在萬)·이익수(李益洙) 등과 함께 일본군의 동향을 정찰하다가 광양주재소에서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오룡면 죽림리(竹林里) 배불산(倍佛山)에서 피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