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철
南井喆1888. 2. 5 ~ 1970. 9.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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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8년 2월 5일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현동면(縣東面) 개일리(開日里)에서 아버지 남희혁(南熙爀)과 어머니 월성 김씨(月城金氏) 사이에서 4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양부모는 남희재(南熙在)와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극삼(極三)이며, 호는 청강(靑江)이다. 이명으로 남정철(南定喆)을 쓰기도 하였다. 1906년 3월 산남의병부대(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종사(從仕)로 활동하였다. 산남의병부대는 을사늑약 이후 동엄(東嚴) 정환직(鄭煥直)의 명을 받은 아들 단오(丹吾) 정용기(鄭鏞基)가 경북 영천(永川)에서 주변 각 군의 의병을 규합하여 창의한 의병부대이다. 고향인 청송 지역의 서종락(徐鍾洛)·남석우(南錫佑)·남석인(南錫仁)·남석현(南錫睍)·김태언(金泰彦)·조태초(趙太超)·오상영(吳相泳)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907년 10월 7일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대장 정용기를 비롯한 이한구(李漢久)·손영각(孫永珏)·권규섭(權奎燮) 등이 전사하였다. 그 뒤 대장으로 취임한 정환직의 휘하에서 입암·동대산(東臺山)·화장(花壯) 등지를 전전하며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7년 12월 영덕전투(盈德戰鬪) 이후 대장 정환직이 체포되어 사망하자 청송으로 귀환하였다. 청송의 의병은 주왕산을 중심으로 청송읍(靑松邑)과 부동면(府東面), 그리고 부남면(府南面) 일원의 청송 동부 지역은 서종락 부대(徐鍾洛部隊), 철령(鐵嶺) 일대의 청송 서부 지역은 남석구부대(南錫球部隊) 남석구(南錫球) 부대가 활동하였다. 1908년 2월경 편성된 서종락 부대는 대장 서종락을 중심으로 중군 우영조(禹永祚), 소모장 윤용식(尹龍植), 군문집사 조경옥(趙景玉), 참모장 심일지(沈日之), 도총 오상영(吳相泳), 도포장 심지국(沈智國) 등으로 편성되었는데 여기에서 종사(從仕)를 맡았다. 1908년 10월 이후 서종락·김사곡(金舍谷)·윤상촌(尹裳村) 등의 핵심 인물들이 붙잡히거나 귀순함으로써 청송 지역의 의병 부대는 점차 해체되어 갔다. 1910년 고와실전투(高臥室戰鬪)를 끝으로 청송의병부대가 해산된 뒤 만주(滿洲)로 망명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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